3. 바그너와의 교우
이러한 쇼펜하우어와 함께 니체에게 큰 영향을 끼친 다른 한 사람으로서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를 들 수 있다. 바그너 역시 니체가 라이프치히시절 만난 사람이였다.
음악에 대해서 깊은 애착을 갖고 있었던 니체에게 있어서 바그너는 새로운 충격이였다. 그는 바그너의 [트리스탄]을 듣고 나서 ‘독일의 새로운 음악’이라는 평가까지 내렸다. 그는 바그너에게 매우 깊은 감동을 받기 시작했다.
1868년 11월에 라이프치히 대학의 교수 부인으로 있는 여동생을 만나기 위해 온 바그너를 니체는 놓치지 않고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바그너 역시 니체와 동일하게 쇼펜하우어에 대해서 대단히 깊은 경애심을 갖고 있었다. (바그너는 당시 존경하던 쇼펜하우어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으나 쇼펜하우어로 부터 거절 당했다. 그리고 그에게 날아든 쇼펜하우어의 대답은 “그는 음악이라는 것을 모른다.”라는 대답이었다고 한다.)이 때부터 니체는 바그너와 함께 쇼펜하우어의 세계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당시 니체는 바그너를 ‘너무나도 독일적인 남성다움의 표상’ 이라고 까지 표현했다.
그리고 니체에게 있어서 생애의 전환기가 찾아왔다. 그를 염세적인 젊음의 어두움으로 부터 단 한번에 해방시켜주는 대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1869년 2월 은사인 리츨교수의 추천으로 스위스 바젤 대학의 고전문헌학 원외교수로 결정된 것이다. 그의 나이 24살 되던 해였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부터 무시험(無試驗)으로 학위를 수여받는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운이였다기 보다는 그의 특출한 문체력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그는 라이프치히 대학의 현상논문(懸賞論文) 에서 니체는 [디오게네소스 라엘티오스의 전거(典拠)에 대해서]라는 논문으로 응모하여 당선되었다. 하지만 그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의 은사 리츨교수의 응원도 컸다. 리츨 교수는 당시의 니체를 자신은 35년이 걸린 학생생활을 그는 단시간내에 해냈다. 라고 까지 표현하며 그를 칭찬해 마지 않았다. 그러나 니체의 해석가들 중에서 당시의 니체 논문에 대해서 대단한 혹평(酷評)을 가하면서 그의 대학교수임용을 잘못된 일이라고 까지 논평한 사람들도 있다. 한 예로 서양철학사를 쓴 램프레히트 교수는 그의 저서 서양철학사에서 “언어학에 관한 그의 논문들은 대뜸 우수한 것으로 인정받았다.”라고 하면서 비꼬기 까지 한다. 그러나 그들의 평가가 어떻게 되었건 우리는 크게 신경쓸 필요가 없다.
1869년 스위스 바젤대학교수로서 활동하기 위해서 그는 부득의하게 스위스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이는 그로하여금 독일인적 색채를 잊어버리게 끔 하는 (남들의 평가가 어떠하든 간에)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당시 바그너도 스위스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마침 바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트리프센이 바로 그 곳이었다. 니체는 이로하여금 매주 일요일만 되면 바그너를 찾아 가게 되어 니체와 바그너는 급속히 친해지게 되었다. 당시 니체는 바그너를 만나는 것을 ‘마치 신의 곁에 있는 것과 같은 안락함을 느낀다.’라고 까지 적고 있다. 그리고 이 당시에 바그너의 부인도 함께 만나게 되는데, 바그너의 부인인 ‘코지마 바그너’는 매우 아름다운 여성으로서 니체로 하여금 애정을 갖게 만들었다. 그녀는 후에 니체의 작품 속에서 ‘아리아드네’라는 이름으로도 등장하게 된다.
니체와 바그너는 당시 교우를 가지면서 많은 부분 사상적인 동화를 이루어 갔는데, 이 때문인지 그들 두 사람간의 사상적 공통점은 많은 곳에서 발견되어진다. 무엇보다도 예술적인 혁명성이 바로 그러했다. 니체나 바그너에게서나 이전의 관습적인 전통성에서 벗어나려고 요동치는 혁명적 인간들이었다. 혁명적인 인간들이 언제나 그렇듯이 그들은 주위로 부터 고립되어 있었다. 그러한 고립감으로 부터 그들 둘은 서로간의 탈출구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이 (1870년) [보불(普佛)전쟁] 발발(勃發)한 것이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여러가지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보불전쟁의 역사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첫 째, 1848년 2월에 일어난 프랑스의 혁명에 이은 3월 혁명이 독일에서 실패하자, 독일의 통일적 염원이 가시화 되어 실질적인 통일의 발판이 필요했다.
둘 째, 1861년 이탈리아의 통일에 의해 독일도 통일화 되어야 한다는 국가적 의식으로 인하여 서유럽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독일인들이 하나로 뭉쳐지기를 염원했다.
셋 째, 자유주의 혁명이 잇달아 성공한 프랑스에서 나폴레옹 3세가 승승장구하며 그의 야심을 잇달아 확대 시켜나갔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의해서 보불전쟁은 예정된 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1862년에 프로이센의 수상이 된 비스마르크는 철혈(鐵血)정책을 내세우며 강력한 중앙집권적 형식의 정치적 변화를 꿈꾸었고, 그것을 위해 프랑스와 독일의 양국관계를 정치적 음모를 통해서 전쟁을 일으키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폴레옹 3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 음모에 가담한 것이다.
이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니체는 자신도 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해보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아직 전쟁에 대해서 환상적인 숭고함만을 지니고 있는 풋내기 젊은이에 지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그는 곧 정교수 까지 올라있던 교수직을 휴직(休職)하고 전쟁에 참전하기로 한다. 그러나 정작 국가에서는 그러한 그를 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책벌레라고 생각하고 의무병으로서의 참전만 허락하였다. 목숨을 걸고 국가와 민족적인 사명을 위해 싸우겠다는 열정으로 가득찬 젊은 니체에게 그것은 대단히 암담한 처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해 10월 니체는 병을 얻고 제대하고 만다.
이 전쟁에서 그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의 육체적인 한계와 전쟁이라는 가혹한 현실적인 괴리가 그것이다. 또한 이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하게 됨으로서 제국주의가 자유주의 보다 우월하다라는 것을 입증시킬 수 있게 되었다. 자유주의적 정신을 높게 평가하는 니체에게서 이것은 하나의 충격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후에 그는 프로이센의 승리를 [반시대적 고찰]을 통해 비난한다.
어쨌든 군을 제대한 니체는 병으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그의 기념비적 작품인 [비극의 탄생]을 저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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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