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니체 그리고 쇼펜하우어
그리고 그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알게 된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처음 접하게 된 때는 본 대학을 다니고 있을 당시 하숙하고 있던 고서적창고에서 우연히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를 접하게 된 것이다. 그는 당시의 기고에서 쇼펜하우어와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남기고 있다.
“당시의 나는 얼마간의 고통스런 경험과 환멸을 보내면서, 아무런 도움도 없는 채로 고독과 허무적인 공간 속에서 떠다니고 있었다. 어떠한 원칙도 희망도 그리고 즐거운 추억도 없는 생활이었다. - 중략 - 이러한 상황 속에서 쇼펜하우어의 저작을 읽는 것이 어느정도의 영향을 일으킬까의 생각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떤날 나는 고서적실에서 이 책을 발견해 정말로 아무런 매력도 없는 이 책을 손에 들고 훑어보고 있었다. 어떠한 악마가 속삭였는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사서 돌아가라] 라고 하는 소리가 귀에도 들렸다. …… 돌아와보니 나는 이 책을 보물처럼 손에 든채로 소파의 깊숙히 몸을 담근채 이 격렬한 어두운 천재의 힘에 몸을 맡겼다. 이 책의 한 행(行) 한 행 부터 체념과 부정과 단념의 절규가 들려왔다. 이 책은 나에게 있어서는 세계, 인생, 자기자신의 심정을 몸떨릴정도로의 장대함으로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았다. 이 책은 예술이라고하는 완벽한, 편견을 전혀 모르는 태양의 황홀함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책으로 나는 병과 치료를, 추방과 비난의 장을, 지옥과 천국을 발견했다. 자기를 인지해서 가학으로 부터 해방당한 욕구가 나를 강렬하게 잡아끌었다.” (학생시대말기의 기고에서 발췌)
필자는 여기서 이 쇼펜하우어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하고 넘어가고 싶다. 제2부에서도 니체의 철학을 다루면서 쇼펜하우어도 같이 이야기하겠지만 우선 쇼펜하우어가 등장하게 된 김에 그의 이야기를 잠시 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는 니체보다 56살이나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그 유명한 헤겔에게 정면으로 도전한 주의주의적(主意主義的) 관념론의 주창자였다. 그의 주의주의적 관념론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본질이란 우리가 본래 지니고 있는 감관 경험(感官經驗)을 초월해서 운동하고 있는 사물과 실체들이 산출하는 관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즉 본 세계는 현상일 따름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램프레히트著, 서양 철학사, 쇼펜하우어中 에서 –
이를 테면 내가 내 앞에 존재하는 책 한권을 보고 있을 때,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책의 본질이 아니라 책이 나에게 보여준 책의 현상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실지로 인지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현상에 지나지 않고 실제로의 본질은 각기 사물과 본질의 의지(意志)적 활동. 즉 힘의 운동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힘의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어떠한 목적성도 없이 오직 자기 스스로가 충족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이 힘이 충족되면 그것으로 현상은 약화되어 종료된다. 따라서 이 세상은 힘과 힘의 충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이 충족되거나 아니면 다른 힘에 의해서 종속될 때에는 종료되거나 혹은 소멸된다. 라는 이론이 그의 주장이다. 그리고 그의 염세관은 이러한 주의주의적 관념론의 연장선으로서 이 힘과 힘의 충돌이 언제까지나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세계는 이러한 모순과 고통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는 괴란(壞亂)에 빠져있다고 하는 것이 그의 염세관이다. 이러한 염세관으로 부터 초월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온갖 욕망들을 단념함으로서 가능한데 이러한 초월적인 상태에서 우리는 진정한 환희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초월관념은 동양철학에서 빌려온 것으로서, 사실 그는 동양철학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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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