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추억 니체를 말하다.
필자에게 있어서 니체는 특별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와 함께 소년기 시절의 사춘기를 보냈으며, 누구나 겪을 만한 열광적인 과도기를 이 정신병자 처럼 보이기 까지하는 위험한 철학자에게서 많은 위로를 얻어내었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도 필자에게 이 글은 특별한 글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니체를 읽는 것을 필자는 익히 알고 있었다. 니체가 수 많은 사람에게 읽혀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의 너무나도 인간적인 철학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니체 이전에 있어서 니체만큼 삶의 본질에 대해서 열광적으로 다룬 인물은 그리 흔하지 않다. 왜냐하면 뛰어난 정신들이 활개를 쳤던 고대 그리스 시절 부터 내려오던 그 피안을 넘나드는 환상적인 진리의 영역으로 부터 많은 철학자들이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8세기 초반에 프랑스의 한 철학자에게서 처음 등장하게 된 포스트 모더니즘의 형식조차도 르네상스의 과도기적 영향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듯한 모습까지 연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역사적인 전통의 굴레안에서 안정된 삶을 영위하는 동시에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고 그러한 모순들이 차차 쌓여가 결국 니체로 하여금 한 꺼번에 분출시키게 하고 만 것이다. 니체는 누구보다도 시대의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가는 철학자가 아닌가? 우리들은 이러한 니체를 통해서 일종의 나르시즘을 감득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니체로 하여금 우리는 얼마나 그를 잘 알고 있는가에 대해서 자기 반성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만큼 자기 반성을 통한 지적향상도 비례적으로 상승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가 니체를 향한 관심을 반성해보도록 하는 의도에서 쓰려고 한다. 물론 니체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 글은 큰 도움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왜냐하면 필자는 니체 그 인물을 통해서 그 철학까지 개괄적 탐구를 시도할 터이니깐 말이다.
이 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을 것이다. 첫째는 그의 생애적인 측면에 관한 것이요, 둘째는 그의 철학사상에 관한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나누는 이유는 개인적인 취향도 있거니와 사상과 철학을 나누어서 쓰는 편이 오히려 효율적이지 않은가 하는 점에서 하는 것이다. (물론 두 부분을 나누지 않고 동시에 쓰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글을 쓰기에는 방대한 외부지식이 고려됨으로.)
그럼 아무쪼록 독자에게 이 글에 대해서 의미있는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당부하는 바이다.
제 1 부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그 광기어린 삶에 대해서
1. 니체의 소년기
1844년 10월 15일 프로이센의 작센주 뤼첸 교외의 작은 마을 뢰켄이라는 곳의 한 목사집에서 니체는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문호(大文豪)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죽은지 12년 정도가 흐른 뒤에 그는 태어난 것이다. 이 괴테는 니체에게 있어서 크나큰 영향을 준 예술가로서 니체가 유일하게 그 광적인 변덕을 부리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괴테를 가리켜 니체는 ‘독일인을 넘어선 존재’라고 표현했고, 베토벤 보다도 더 영적으로 성숙했다고 까지 말했다.
그의 아버지 칼 루드비히 니체는 프로테스탄트파의 목사로서 전통성을 상당히 중요시 했고 가풍도 그의 아버지의 성격처럼 유지되어갔다. 니체는 그러한 아버지로부터 프로테스탄트주의의 성향적 특성을 짙게 가져오게 되었다.
잠시 얘기를 벗어나서 니체의 집안은 엄밀히 따져서 독일인이 아닌 폴란드 출신의 집안이었다. 한 이야기로는 니체가 폴란드 왕가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또는 폴란드의 몰락귀족의 태생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확한 것은 잘 모른다. 그러나 니체가 이 사실에 대해서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여 자기 자신은 폴란드 귀족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대단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 프란체스카 역시 목사의 딸로서 크리스트교의 전통에 대단한 신뢰를 가진 여성이였다. 이러한 부모들에게서 자라게 된 니체는 이른바 전통적 지식인으로서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는 듯이 보였다.
사실 이러한 집안 분위기는 그 당시의 독일(독일 제국 성립이전의 즉 프로이센)의 분위기의 영향을 받았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시대는 급속도로 안정화 되어 가기 시작했고, 유럽은 세계적으로 산업혁명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많은 식민지를 확보해 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니체는 19세기의 풍요로움을 만끽했던 것이다. 이러한 가정 분위기를 니체의 동생인 엘리자베스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뢰켄의 목사관과 그 일가의 단란함은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마저 누구에게라도 대단히 아름답고 정말로 행복한 가정 그 자체였다. 아버지의 놀라우리 만치의 훌륭한 음악, 풍요롭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정신적인 바탕, 사랑할 수밖에 없는 쾌활함이 집 전체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니체의 생에 중)
니체는 이러한 집안에서 대단히 순종적이고 모범적인 아이로 성장해갔다. 그리고 모두들 그가 곧 아버지 처럼 훌륭한 목사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곧 변화가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죽음. 그것은 니체나 그 가족들에게 있어서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니체는 이때 부터 환경적인 풍요로움에만 의존할 수 있는 그러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태어난지 얼마 안되는 동생 요세프 까지 경련으로 인해 사망하고 만다. 당시의 사건에 대해서 니체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일기를 남겼다.
“동생이 경련을 일으키던 날 밤 집안은 온통 어두운 그림자로 휩싸여 버렸다. 창문밖에서는 천둥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 중략 - 그리고 동생의 죽음의 공포감에 질려버린 어린 여동생이 나의 방에 들어와 같이 잘 수 없겠냐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정적이 휘감아도는 넓은 방에서 나란히 침대 위에 누워 손을 잡고 이 밤이 서둘러 지나가길 기다렸다. 내 곁에 누운지 얼마 안되어 작은 숨결을 고르며 자고 있는 동생을 보고 나는 지금까지 느껴보지못한 감정에 휩싸이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이 글은 니체 사후(死後)에 엘리자베스의 원고 속에서 함께 발견된 당시의 니체의 글로 추정되는데, 진의가 어찌되었건 이 글을 통해 니체는 근친상간의 행위에 대한 많은 의혹을 사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버렸다. 흔히 니체를 근친상간을 범한 타락한 인간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증거로 이 일기를 삼는데, 사실 이 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니체의 대단한 글 솜씨와 그의 탁월한 감수성일 뿐이다. 아마도 필자의 생각에는 니체사후 니체를 과대평가하려 했던 엘리자베스가 고의적으로 니체의 글을 조작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사실 실제적으로도 니체의 저작에 많은 부분 엘리자베스가 고의적으로 내용을 조작한 부분이 있는데, 이 점이 결국엔 많은 니체 주석가들로 하여금 니체 저서의 진위여부를 가리는데 있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되고야 말았다. 물론 지금은 많은 부분 교정되었지만 아직까지 교정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미처 말하지 못했으나 윗 글의 니체의 일기는 필자가 직접 구할 수 없었다. 니체에 대한 서적 중에서 꽤 낡은 서적을 발견한 적이 있었는데 그 책에서 본 내용이였다. 그러나 후에 그것이 무슨 책인지 어떤 도서관에서 읽게 된 책인지 알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횟수로 따져도 몇 년 전에 읽은 글이라 불확실하나, 대단히 인상깊게 작용했던 니체의 문체에 의해서 몇 가닥 남은 필자의 기억력에 의존해 글을 적게 되었다. 혹 이 문제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필자에게 지적해 주길 바란다. 그 즉시 글을 수정하도록 하겠다.)
이 일을 통해서 니체의 어머니 프란체스카는 미망인이 됨과 동시에 한 꺼번에 두 아이를 홀로 떠맡게 되어버린 그 충격으로 인해 뢰켄을 떠나 여러 친척 부인들이 사는 나움부르크로 이사를 떠나게 된다. 이 곳에서 니체는 그 스스로가 후에[나움부르크의 덕목]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게 된 도덕적인 교양을 주입당하게 된다.
이 곳에서 니체는 초등교육을 받게 되고 14세가 되던해에는 그 재능을 인정받아 유명한 라이프니츠, 피히테가 졸업한 김나지움 슈르프호르타에 입학하게 된다. 여기서 처음으로 그는 고대 그리스의 정신과 만난다. 그러나 이때 만난 그리스의 정신이란 프랑스 혁명이후 잔재해 있었던 자유주의정신의 잔재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였다.
김나지움에서의 생활은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그의 사상적 기반이 처음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 바로 이 때였다고 볼 수 있다. 당시 그는 [트리스탄]의 피아노 발췌곡(抜粋曲）을 통해서 알게된 바그너도 이 때였고 (1861년), 셰익스피어, 괴테, 휄더린등을 애독하면서 시대적인 반항성을 키운것도 이때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아직까지의 니체에게서는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는 정신적인 의무감이 잔재해 있었던 것이다.
1864년 슈르프호르타를 졸업하게된 니체는 그해 10월 본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전공은 신학(神學)과 고전문헌학(古典文獻學)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목사로서의 기반을 다지는 길이었다. 이 때 그는 학생동맹 프랑코니아에 가입하게 되는데, 이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던 그의 전형적인 성격을 스스로 고치기 위해서라고 보여진다. 아무튼 이를 통해서 그는 생활이 난잡하게 되어버렸다. (이 당시 프랑코니아는 빈체제가 결렬된 후에 사실상의 명목상의 자유주의 학생연합이였고 실상은 음주와 방탕한 놀이를 즐기는 일종의 사교클럽이었다.) 이 당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그러한 생활을 통해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그리고 이 난잡한 생활을 하게 될 당시 같은 학생동맹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창녀촌을 접하게 되어 매독에 걸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당시의 니체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내성적이고 도덕적인 성품으로 인해서 거리의 여자들과 직접적인 성관계를 가진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매독에 걸렸던 것은 사실이다. (후에 이 매독감염설(梅毒感染說)은 그의 발광의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그외 다른 하나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에서 추리한 유전적뇌질환설(遺傳的腦疾患說) 이다.
이 때부터 그는 고전문헌학만을 전공하기 위해 본 대학에서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기게 된다. 그의 은사 리츨교수가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기게 됨으로서 그도 동시에 옮겼다고도 볼 수 있으나 그 뒷 배경에는 크리스트교와의 이별이 존재하고 있었다. 당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더 이상 신학은 배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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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