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런 나의 누이에게
나는 최근 페미니스트가 되었으며 그와 같은 기사를 최근 출판하게 된 예전에 알던 어떤 누이의 글을 접하고
슬픔에 젖어 이 글을 쓴다ㅠㅠ.
우선 그 시절 그토록 건강하고 밝던 그대가 페미니즘같은 이상한 도그마에 빠진 것을 몹시 슬퍼하며
그대의 글에 나타난 숱한 오류와 잘못된 세계관을 깨우치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쓴다.
누이여. 우선 나는 그대가 가족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 몇몇 공동체를 보고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그대의 생각을 철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크게는 필자가 경멸하는 천박한 영미의 철학체계의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자신의 괘변에 대한 변명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대가 제시하는 결과들은
또한 어이없게도 플라톤적 이상국가와 너무도 닮았다. 그대의 생각은 이 두가지 조잡한 생각의 혼합물일 뿐임을
그대에게 깨우치고자 한다.
누이여. 그대는 그대가 생각하는 대안적 공동체가 마치 현대사회에서 새로 대두하게 된 그야말로 혁신적인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철학의 영역에서도 그렇듯 그대가 생각하는 대안적 또는 이상적 가정에
대한 아이디어들은 유사이래로 숱하게 있어왔던 곰팡이 쓴 것들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럼 이 곰팡내 나는 관념의 대부격이 되는 플라톤을 살펴보기로 해 보자. 플라톤의 업적은 우선 그대와 같이 함께
살 누구에 대한 생각에 지친 가련한 영혼으로 부터 그대가 지고 있는 근심을 이탈시켜 대안적 가정이라는
이데아의 세계에 도달한다. 이 사람은 선남선녀의 결혼은 제비뽑기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이런 가정에 태어난 아이들에 대해서는 적지않은 특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이런 아이들은
국내에서 양육되어야 하고 이러한 결혼에 의하지 않은 아이들은 국외로 추방되어야 하며, 추방된 아이들 중 성장에 따라 유망한
장래성을 보이는 아이는 다시 국내로 불러들일 수 있고, 국내에 남아 있는 아이 중 청년기에 장래성이 보이지 않는 아이는
추방할 수 있다고 하였다. 안타깝지만 이러한 플라톤의 주장은 급기야 포퍼로 하여금 플라톤을 열린사회의 적이라는
규정을 받도록 하고 있단 말이네. 그런데 이런 구태가 그대들이 생각하는 공동체와 유사한 사회라는 것을
알고 나는 전율했네.
누이여. 그대는 대안적 사회로 이러한 디스토피아를 제시하여 놓고도 그것을 과학이라고 그럴싸한 포장으로 변명하고 있어
나는 몹시도 마음이 아팠네. 주로 영미계열의 천박한 경험주의를 핑계로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네.
이 대목에 이르러 나는 몹시 가슴이 아프네. 사실 여러체계의 철학을 섭렵하여 대초월이란 웅장한 대 건축물을 세운 나로서도
거기에 대해 누이가 반드시 틀렸다고 꾸짖을 수 있는 근거가 아직까지 빈약한 것이 사실이라고 나는 인정하기 때문이네.
확실이 그런 천박함에는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면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 줄만 하다고 보네. 그러므로 난 주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그냥 보통 이 세상에는 과학적인 사고만이 전부는 아니다는 둥의 도덕적 훈계로 적당히 넘어가려고 하지만
그대의 태도로 보아 이런 정도의 말을 피식 비웃을 것이 뻔에 보여 달리 말을 찾지 못하겠다.
단지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은 우리의 남녀유별과 같은 너무도 고귀한 많은 전통의 의미를 단지 실용적인 관점에서
구습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을보고 마음아파하고 있다. 사실 우리사회는 연약한 여자를 위해 군역에서도 면제해주는 등
매우 합리적인 법률로서 보호하고 있는데도 말이야. 그들은 자신들만의 서구우월주의의 시각을 가지고 동양적가치를
무시하고 일체를 오리엔탈리즘적으로 접근하지. 물론 나는 그것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시각은 단지 편견일 뿐이라고
생각하네. 하지만 그대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네. 그러나 내가 많은 세월 철학에 투신해온 결과
헤아린 바에 의한 바를 들려주자면 대개 그들의 철학체계는 궁극에 있어 습관과 싸우게 된다는 것이지. 아무리 좋은 대안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습관이 바뀌지 않으면 안되니까. 나의 철학 체계에서도 이 부분과 관련된 부분이 가장 난해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거든. 말하자면 이론적인 접근이 매우 어려운 심연이라고나 할까. 나야 원래 실천을 싫어하는
순수한 이성주의자이므로 이점에 대해서는 누이가 더 잘 알 수도 있을 것이지만 나의 충고는 아마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
는 점을 말해 두고 싶네. 솔직히 말하자면 나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습관을 바꾸기보다는 습관에 적응하는 자연주의자가 되라고
권하고 싶지만 이것도 그대가 바꾸는 것을 좋아하는 것에 마지못해 해본 소리이다.
누이여. 내가 그대의 글을 읽으며 가장 어이없고 가장 슬펐던 것은 대안적 공동체를 찾기위해 사랑을 단념해야 한다는 그대의 말이었다.
정말 이런 말이 등장할 줄은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네. 이 정도의 무지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까지 든다.
농담이나마 한가지 묻고 싶다. 지금까지 무엇을 하면서 살아왔느냐고?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말야 어떤 인간 어떤 사회가 반드시 추구해야 될 절대적 보편가치이란 말이지. 도대체 그대는 행복이란 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선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가. 우리가 그것을 사랑하지 않는 때 조차 그것을 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서도 효율성을 추구하겠다고 하는데 그것을 일러 도구적 효율성이라고 하는 것일세.
누이여. 전체적으로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따지려는 그대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과거에 데카르트와그의 심신이원론을
반박한 영국의 공주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테면 정신과 육체가 독립된 실체라면 어떻게 영혼이 육체를 움직여 돌멩이를
들어올릴 수 있느냐는 질문에 데카르트는 접촉없이 중력이 돌멩이를 떨어뜨리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지 반문을 했다네.
덧붙여 아름다운 아가씨가 여성적인 덕목을 배우지는 않고 무용한 지식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것을 경계하는 충고를 했다고 하네.
과학이니 뭐니 하는 것도 좋지만 말야 틈나는대로 교양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네. 과학에서 교양을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란 것을
깨닫거든. 뱁새가 황새따라가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지는 법이지. 이건 데카르트 선생의 생각을 내가 짐작하여 풀어주는 것이네.
어쨌든 누이여. 이제 결론을 내야 할 시간이네.
자네의 글을 읽어보니 결국 한마디로 "나는 매우 눈이 높은 여자예요"라고 할 수 있는 것 같더군. 자네는 감히 지상에서
존재할 수도 없는 이상적인 남성상을 정해놓고 그런 남자가 없다고 매우 괴로워하고 있더군.
그것보다는 이쯤에서 칸트와 같은 사고상의 코페르쿠스적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 어떨까.
자신의 이상형에 남자를 맞추려 하지 말고 남자한테 자기자신을 맞추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다는 것이네.
누이여. 나는 무엇보다 누이의 유위적 태도가 질색이다. 나는 자연주의자이다. 제발 남자들을 내버려 두기를...
내 듯건대 사람의 헤아림이 하늘에 헤아림만 같지 못하다고 하네.
누이도 쓸데 없는 걱정으로 청춘을 허송하지 말고 끝없는 무위의 그늘에서 낮잠이나 함께 청해 보는 것이 좋을 듯 싶네.
그럼 이만 그대의 깨달음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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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