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개인적으로 필자에게 있어서 인생의 큰 전환기를 마련하였던 한 권의 책이 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라고 하는 책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의 독일 사회를 격렬하게 꼬집고 들어간 불후의 명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시대적 상황이 이 책의 우수성을 더욱더 명확히 하는 후광으로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독자 개개인의 몫이지만, 한 인간으로서 이 책이 서사시키는 의미라는 것은 감히 어떠한 배경적인 내용으로서도 침범할 수 없는 것이다.
필자는 이제 이 책이 진정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철학적인 내용의 본질과 그 내용을 필자 개인적인 역량에 맞추어 풀어보고자 한다.
2. 헤르만 헤세 그리고 독일
데미안이라는 소설은 일인칭 관점의 저자수기형식의 글이다. 따라서 독자로 하여금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 글은 쓰여진 것이다. 이러한 글의 형식은 글의 내용이 픽션이 아닌 논픽션의 경향을 띄게 함으로서 독자에게 강렬한 실재감을 조성시킨다.
이러한 목적으로 쓰여졌기 때문인지 헤르만 헤세는 출판 당시부터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단지 책에 기술되어 있는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출판하였었다. 싱클레어라는 성은 그리 흔하지 않은 독일식 이름으로 유명한 시인 휠더린의 친구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휠더린은 반평생을 정신분열이라는 정신병에 시달린 불행한 시인으로서, 아마도 당시 정신병을 앓고 있었던 헤르만 헤세가 자신의 그 심적 고통을 이 글을 통해 표현시키려고 한 것처럼 보여진다.
그리고 그의 개인적인 내용과 더불어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이 책이 출판된 년도는 1919년도로 독일이 세계1차 대전에서 패망한 직후 파리회의에 의해서 독일이 절망의 길을 걷게 될 때의 시점이다. 그 당시 독일은 빌헬름2세(재위 1888-1918)를 축출하려는 움직임이 일었고, 그에 따라서 수많은 혼란이 일어나는 시점이기도 했다.
마치 이것은 헤르만 헤세의 당시 상황이나 데미안에 나오는 싱클레어의 상황과도 비슷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상실한 방황하는 자아가 전쟁으로 인해서 국가적인 정체성의 위기를 안게 되었던 독일을 대변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아무튼 이러한 적시의 상황 속에서 데미안은 독일국민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얻게 되었고, 데미안의 주인공 '막스 데미안'은 새로운 지도자의 모습으로 당시 독일 젊은이들에게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시대적인 사건과도 동시에 이 책에 영향을 준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철학사적 영향이다. 당시 독일은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에 의해서 기존의 관념론적 철학사조가 급변하여 추상적인 유희가 아닌 실존적인 의미로서의 철학이 대유행을 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이 등장하게 됨으로서 인간은 더 이상 이성만으로서 사유하는 동물이 될 수 없었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전의 철학사적 사유는 세계 안에 내제 되어 있는 모든 문제점들은 모두 이성의 판단과 실천에 의해서 해결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왔으나, 그러한 사유 적인 결과가 결국 실제라는 것과 엇갈리게 되면서 좁은 이성은 이제 모든 면에서 인간을 완전히 대변할 수는 없게 되어버렸다.
데미안은 이러한 시대적 문제에 직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주인공의 이름인 '데미안'(Demian)은 독일어 Demon(악마)의 어원에서 나온 것으로 악마적인 개념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의 교리가 이성의 전부를 대표하던 (물론 건전하고 독립적인 이성을 가진 이들을 제외하고)당시의 이성 만으로서는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이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도출되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믿음의 대상을 필요로 하였고, 니체와 프로이트의 실제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인간의 새로운 인격을 본받은 헤르만 헤세는 마침내 '데미안'을 창조하기에 이른 것이다.
3. 소설 데미안의 목적
소설 데미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의 개인적인 인격의 실현이라고 볼 수 있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처음부터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라는 글로서, 싱클레어 스스로의 의지로서 살아보려 하던 것이 외부와 충돌하고 대립하면서 고통받고 또 이를 극복한다는 내용을 미리 암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담으로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읽어보면 자연주의적 인간의 묘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의 소설의 주인공 대부분이 이러한 인물들이며, 이렇게 독자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이 구속과 억압적인 사회의 틀과 대립하는 상황을 헤르만 헤세는 즐겨 묘사했다. 아마도 헤르만 헤세의 개인적인 인생관에 의한 것이리라 필자는 추측한다.)
또한 그 개인적인 인격의 실현은 국가나 사회 혹은 단체나 공동체가 이룩해야할 것이 아닌 개인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개인적인 존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개념들은 사회로부터 빌려 온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던 것이 단지 사회적인 개념과 동시에 현상되었을 뿐이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으로서, 이는 철학의 위대한 선구자로 불리는 칸트 이래로 형성되어온 계몽주의적 철학사조의 영향으로 보여진다. (장자크 루소로부터 이러한 계몽주의적 철학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칸트가 루소가 이룩하지 못한 철학적 완전성을 이룩했다는 점을 빌어서 필자는 칸트를 계몽주의 철학의 중심으로서 이해한다.)
4. 인물의 경향과 그 의미
소설에서 인물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로서 만일 저자가 소설을 통해서 무언가의 의미를 전달하고 싶다면 소설 속의 인물을 빌려와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먼저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앞서 말한 바, 헤르만 헤세의 분신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자아 관념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또한 형성된 자아관념이 외부 세계와 쉽게 융화되지 못하는 약간 자폐적인 경향의 인물이다. 사실 이러한 인물들은 사회 곳곳에서 쉽사리 발견할 수 있으며, 사회적인 특성을 지니지 못한 탓에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받기가 쉽다. 특히 사색적이고 철학적이며, 감수성이 예민하고 주관이 남다른 인물들이 바로 그러한데, 사회는 보다 쉽게 요구하는바에 응하며 형식과 보편타당성을 갖추기만을 요구하기 때문에 방금과 같은 경향의 사람들은 사회화가 쉽게 되지 않는다.
잠시 이야기가 빗나갔는데, 아무튼 이러한 사회적인 대다수의 의견 속에서 제외된 소수의 특수한 인격을 싱클레어는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다음은 '막스 데미안'이다. 막스 데미안은(이하 데미안으로 한다.) 싱클레어와 비슷한 부류의 특수한 인격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서 싱클레어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확고한 자아성이다.
이러한 확고한 자아성은 소설에서 부분부분 묘사되고 있는데, 특히 카인이라는 부분에서 그의 이러한 확고한 자아성이 제대로 묘사되어 있다.
싱클레어가 미약한 자아성과 사회로부터의 격리 혹은 사회로 돌아가고픈 욕구에 시달리고 있는 것에 반해서, 데미안이라는 인물은 완전한 인격체로서 사회가 그를 격리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사회를 격리시켜 버린다는 인상마저 남긴다.
특히나 그의 이러한 특수성은 소설 속의 묘사로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는 마치 자신의 모든 말과 행동이 스스로의 의지로 인한 명령에 충실한 듯 행위함으로서 사회가 요구하는 형식과 보편성이 오히려 결핍되어있다는 느낌까지 준다.
여기서 잠시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공통점과 상이점을 알아보기로 한다. 둘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비사회적이며 독자적인 자아 관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비사회적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를 배격하거나 사회적인 것을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념으로부터 자신의 인격과 자아를 완전히 독립시킨 것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어떤 어리석은 이들 중에 이러한 비사회적인 것의 본질적인 개념을 완전히 오인하여 사회적인 것을 적대시하여 비사회적인 행동, 예를 들어 범죄같은 행위를 서슴치 않고 행하는 것이 용기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않게 존재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몰이해적인 인격을 경멸한다. 이 같은 것에 관해서도 다음에 소개될 인물을 통해 묘사된다.)
이에 반해서 상이점은 그들의 자아 관의 상대적인 특성이다. 먼저 싱클레어는 자아 관에 대해서 언제나 고뇌하며 불확실한 감정에 휩싸인 채로 방황하는 반면에 데미안은 자신의 확고한 이성의 사려와 판단을 통하여 단순히 자아에 대한 믿음이나 어거지적인 추상이 아닌 실현될 수 있을 만큼의 관념을 자아 관에 귀속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좀더 이야기 할 것이 남아 있지만 철학적인 의미를 살펴보는 가운데 그 나머지를 이야기 하기로 한다.
데미안에서 나오는 인물 중에 비중이 가는 인물들은 위의 두 명뿐이지만, 소설의 줄거리 진행을 위해서 필요한 인물들이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첫 번 째로 프란츠 크로머 라는 인물로서 싱클레어가 유년기일 당시 세계의 양분화에 고민하고 있을 때, 싱클레어를 유혹하던 인물이다. 사실 괴롭혔다는 말로서 설명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지만 프란츠 크로머가 싱클레어에게 그러한 식으로 괴롭혔다는 뜻은 자신의 뜻대로 하고 싶었던 욕구와 동시에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했기 때문이라는 필자의 개인적인 해석이 깃들여져 위와 같은 말을 쓰게 되었다. 아무튼 이 프란츠 크로머는 비사회성을 오인하여 버린 몰지각한 인간으로 자아의 성격 같은 것이 자신의 이성적 성찰로서 이루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몸담았던 세계의 관념에서 빌려온 것에 지나지 않는 다는 점에 미루어 볼 때 그도 한낱 사회가 만들어 낸 인격적 무능아 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피스토리우스라는 인물로서 외관상으로서는 매우 특이하고 독자적인 인물처럼 보여지지만 사실상 자아적 관념이 자신에게 확고하지 못한 약간의 자아적 결핍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서 보여진다. 그는 인간이 스스로 발전하고 또한 독자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진작 자신 스스로는 그렇게 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점에 있어서 그를 결핍체로 만들고 말았지 않았나 하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데미안의 어머니로 등장하는 에바(EVA)부인이 있다. 영어의 이브(EVE)와 같은 어원으로 알려져 있는 에바라는 여성은 데미안이 그런 것처럼 양성적인 측면을 지닌 인물로서 묘사된다. 데미안에 줄곧 등장하는 신 '압락사스'가 그러하듯이 데미안과 에바부인은 양성적으로 빛과 어둠, 차가움과 강렬함, 굳셈과 부드러움,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지닌 인물로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인물묘사는 보다 더 인물을 신격화 시키려는 저자의 의도가 엿보이는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신은 낮과 밤이요, 여름과 겨울이요, 전쟁과 평화요, 잉여와 굶주림이다.''라고 말하듯 이러한 극단적인 양성화의 결합은 신비적이고 완전성을 가지는 의미로서 우리에게 표현되어 있다.
5. 데미안의 철학적 의미에 관해서
데미안이 굳이 철학적인 의미를 갖추기 위해서 쓰여진 글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의식하든 하지 않든 간에 철학적으로서 우리에게 어떠한 개념과 의미를 암시하고 있음에 틀림없으므로 차근차근 소설 데미안에서 감추고 있는 철학적 의미에 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헤르만 헤세가 철학에 대해서 심도 있게 배웠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나 확실히 철학적 지식을 그가 가지고 있었음에는 틀림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니체에 관해서 그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소설 데미안 속에서도 싱클레어가 철학을 공부하면서 니체를 배웠다는 부분이 묘사되어 있고, 1919년 출간된 [짜라투스트라의 귀환, 어느 독일인이 독일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한마디]라는 유인물에서 엿보이듯이 그의 니체 사랑은 그의 작품 대부분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또 한가지가 더 있는데, 당시 그는 정신병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어서 정신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당시 주치의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연구해 보라는 권고를 듣고 데미안을 쓰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볼 때 데미안의 철학적인 의미를 해석할 때, 니체의 사상과 정신 분석의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1) 니체의 사상과 데미안
니체는 잘 알다시피 '초인'과 '자기초극'을 자신의 철학적인 주체로 삼았다. 영원회귀와 권력으로서의 의지는 그의 '초인철학'을 뒷받침하는 개념으로서 존재하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니체 사상의 주체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보여진다.
니체는 자신의 사상에서 '모든 단체와 공동체는 인간을 더럽힌다.'라고 파악하고 인간을 그러한 공동체적 의식 속에서 완전히 탈피시키고자 모든 단체, 종교, 공동체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또한 그는 인간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완성시키고 초극시켜야 한다는 개념아래 '고독'과 '자기초극'이라는 관념을 중시하면서 인간의 완전한 인격완성을 요구했다.
그러한 인격 완성체가 '초인'이고 헤르만 헤세에게 와서는 그것이 '데미안'으로 승화되었던 것이다.
또한 재미있는 것 중에 하나는 데미안과 니체의 사상 속에서 그 어디에서도 인간적인 도덕성을 지향하는 관념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니체의 사상 속에서는 보편성과 인륜적인 사회성이 요구하는 인간적인 도덕성이라고 하는 것은 한낱 낡은 관념과 가치에 불과하며, 인간이 스스로 초극되고 발전되기 위해서는 그것(그러한 관념)조차도 뛰어넘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데미안에서도 데미안의 이름 그 자체가 말하고 있듯이, 인륜적 도덕성에 관해서는 전혀 무관심하게 아니 적대적으로 대응하는데, 그러한 인륜적 도덕성이 인간을 본질적인 자아의 의미로서 결핍시킨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으리라 생각된다.
(사실상 인륜적 도덕성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가 요구하는 덕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회도 일종의 유기체로서 스스로가 발전하고자 하는 욕구가 존재하고 또한 그러한 욕구는 보다더 이상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러한 인륜적 도덕성을 사회 구성원들에게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추측해 볼 때 니체가 요구하던 '초인'이라는 개념이 데미안에 와서 보다 더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니체의 초인개념과 데미안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니체의 초인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묘사한 '덕이 있는 자'에서 빌려온 것으로서 사회적인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지닌 귀족적인 인격체라고 볼 수 있다.
데미안은 사회적인 지도자로서 굳이 묘사되고 있지는 않지만 (후에 군 장교로서 등장하기는 하지만) 귀족적인 그의 이미지와 함께, 고고한 인격에 동시에 강인한 그의 이미지는 니체의 초인개념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니체가 초인이라는 개념을 너무 시적이고, 복잡하게 묘사한 탓에 그 개념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으나 헤르만 헤세에 이르러서 그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도 보여진다.
2) 프로이트와 데미안
프로이트가 니체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유아기의 개인적인 경험이 니체가 말한 사상의 일부분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아무튼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에 의거해 볼 때 인간의 자아라고 하는 것은 초자아와 이드 사이의 것이라고 한다면, 데미안 속에서의 자아라고 하는 것은 빛과 어둠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라고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데미안에서는 꿈에 대해서 자주 언급되는데 이도 위와 마찬가지로 프로이트의 영향으로 보여진다. 특히 데미안이 싱클레어가 꾸는 꿈에 대해서 해석하는 부분에 와서는 그러한 의미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발표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많은 저항을 받았다는 것을 독자들은 알리라 믿는다. 프로이트는 정신 속에서 인간의 이성은 완전하지 못하며, 오히려 초자아와 이드의 지배와 영향을 받는다라고 설명함으로서 인간의 이성의 무력함을 표시했고, 그와 더불어 성욕이라는 개념에 강한 집착을 보임으로서 이성의 안락과 안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던 종교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한편 프로이트가 완성된 인격에 관해서 논할 때, 초자아와 이드 그리고 자아가 안정된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완성된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데미안에 오면서 완전하게 승화된다. 데미안은 유능하고 이성적이며 고고한 인품의 인물이지만, 알게 모르게 성적인 매력을 띄고 있고 그러한 매혹성이 오히려 그를 신비적이고 우월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그러한 악마적인 특성 다시 말해 성욕에 집착하는 인격이나 정신 같은 것을 프로이트가 설명한 것을 데미안에서는 데미안의 이름 그 자체에서도 표현되었듯이 그러한 악마적인 개념을 데미안에서도 엿볼 수 있다.
3) 데미안과 죽음
죽음에 관한 개념은 일찍이 관념이 지배하던 철학적 사유에서 중요한 문제로 각인되어 온 것이다. 특히 헤겔에 들어오면서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자아의 주인과 노예가 구분되는 절대적 부정성으로 이해되면서 우리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 죽음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버렸다.
데미안에서 죽음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묘사된 부분은 그렇게 흔하지 않거니와 또한 그렇게 상세하지도 않다. 단지 등장인물인 데미안의 사색 속에서 죽음을 떠올렸다는 묘사가 간접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이 해석에 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실제로 데미안이 어떤 사색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저자 자신만이 알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데미안이 죽음에 대해서 연상했다고 하는 점은 다음 몇 가지 근거를 두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유년기 시절의 싱클레어의 꿈에서 프란츠 크로머가 그에게 칼을 쥐어주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라고 명령했다는 점. 두 번째, 또한 싱클레어의 꿈에서 싱클레어 자신이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는 점. 세 번째, 카인의 이야기에서 데미안이 카인의 살인 행위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의미를 해석했다는 점. 네 번째, 데미안이 사색하고 있을 때의 외부 묘사가 마치 죽은 자의 외관을 떠올리게 했다는 점이다.
데미안에서 왜 섬뜩한 죽음에 관해서 그렇게 묘사를 했는지에 관해서 의문을 갖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맹점이 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삶만큼이나 친숙하고 가까운 것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실존적인 의미로서 죽음은 생명의 끝이며 그것에 있어서는 어떠한 관념적인 개념도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 내부에서 생성되는 죽음이라는 것은 단순한 끝이라는 것을 넘어서서 자기의식을 완전히 이루게 하는 절대적인 권력으로서 인식되는 것이기도 하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의거하여.)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의미로서의 죽음이란 새로운 탄생 혹은 정화라고 볼 수도 있다. 죽음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관념적인 개념은 어떻게 한 마디로 축약하기는 어렵지만, 확언하건데 우리의 자기의식 내부에 존재하는 '자아'라는 개념과 이 죽음이라는 개념은 절대로 따로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흔히 사람들은 이것을 따로 놓고 생각하려는 의도를 가지지만)
데미안의 이러한 사색적인 모습에서 엿보이는 것은 그가 생각하는 바가 흔히 우리가 사색하는 방법으로 알려진 '회의방법론'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와 반대로 '회의론'에 의한 것이 아닌 절대자아라는 개념 속에서 파악되는 '자아와 타아의 실체적 구분의 방법' 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회의론적 방법론은 자아를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회의에 회의만을 목적하는 그야말로 '사고에 빠져버린'방법이라고 칭할 수 있다. 헤겔은 회의론이 결국에 목적하는 바는 '자살'이라고 언급한바 있다.
아무튼 데미안은 자신의 자아적 개념을 확고히 하고 또한 그것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자신 속에 잠재된 자아 관념을 죽음에 친숙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처럼 데미안에서의 철학적 의미를 세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어떤 독자 가운데 소설 데미안에서 말하고 있는 고유한 철학적인 의미도 있지 않겠느냐? 라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지로 봤을 때, 데미안의 철학적인 내용은 대부분 저자가 흥미에 두고 있었던 철학 사상들로부터 빌려온 개념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을 독자적인 형태로서 이해하려는 것은 오리지널리즘에 반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필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데미안에 대해서 막연한 철학적 개념을 지녀왔던 독자들에게는 안타깝지만 그러한 막연한 상상은 거둬두기를 바랄 뿐이다.
6. 데미안 그리고 우리
이제 이 글도 마지막을 할 때가 왔다. 필자가 여러 모로 데미안에 관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이해를 불러일으킬려고 노력하였으나 모자란 점이 엿보인다는 것을 시인하고 또한 그 점 양해바란다.
우리 나라에서 잘 알려지고, 널리 읽혀지는 외국 문학 중에서 데미안이 상위권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필자는 가히 감동했다. 데미안이 말하고 있는 계몽적인 사고관념이 우리나라에 정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았기 때문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대두되고 있는 문제점 중에 하나가 대중성의 폐단이고, 대표적인 예로서 종교적 폐단이 바로 그것이다. 종교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신 앞에서 모두 공평하다는 말도 안 되는 사상으로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그들의 진리로서 사람들을 모두 다 획일화 시켜보려는 폐단 적인 현상은 사실 우리나라의 현시점에서만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를 논할 것 없는 세계적인 문제라는 것은 따로 논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인간이 공평하고 모두 다 동등하다라는 생각은 사실 끊임없이 우리를 환상으로 내모는 이성이 만들어낸 한낱 이념이나 공상에 불과하며, 세계가 필연적으로 안을 수밖에 없는 불평등 속에서 회피하고자 하는 가상이 만들어낸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실로 사회적으로 결핍되거나 혹은 인간적으로 결핍된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서 그 문제점의 해답을 찾을려고 노력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대적인 차이와 또한 그것의 불평등은 선천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으로서 회피할 문제의 것이 아니다. 종교에서는 신이나 진리의 이름으로 그것을 회피하려고 하지만 사실 종교에서조차 그들의 교단아래서 불평등과 자아의 상대적인 차이를 요구하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필자는 맨 처음 데미안을 읽었을 때 위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실마리를 얻고 그 희열에 흥분했었다. 세계가 우리에게 부여한 혹은 우리의 운명이 부여한 그 모든 문제는 다름 아닌 우리 개인 각자가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 개개인 각자는 스스로의 운명의 짊을 스스로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연의 투척]이며, 또한 그것은 각각의 고유한 운명이다. 우리의 모든 운명은 결국 우리 스스로가 되는데 있다는 것이다.
이제 필자는 데미안에서 나오는 유명한 격언과 함께 이 글을 접고자 한다.
마지막까지 읽어준 독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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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