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어느 날... (어제였다.) 저녁을 먹기 위해서 나는 다른 대학원생들과 같이 학교 식당엘 갔다.
1500 정도의 식사를 사서 다른 학생들과 같이 밥을 먹으면서, 언제나 그렇듯이 갖가지 잡담을 나누었다. 나는... 별로 얘기를 많이 하지 않는 편이지만.
어제는 마침,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내 맞은 편의 후배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나온 기사들을 이야기하면서 그 용의자가 약 40대쯤 되는 남자이고, 정교하게 살인하지 않는, 난도질을 하는 사람이라는 얘기 등을 했다.
그 후배는 사회 철학을 전공하는 박사과정의 학생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철학적인 입장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다. 사회가 자본주의 성숙기에 들어서면서, 예전에는 이른바 "삥뜯는" 범죄가 많았다가 점점 더 엽기적이고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는 범죄가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한편 그 친구는 여자들의 범죄의 표적이 되어서 난도질을 당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어도 이웃집의 사람들이 결코 나와서 도와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자기 아파트에서 부부 싸움을 하던 한 여자가 끊임없이 비명을 질러댄 적이 있었단다. 그래서 자기가 뛰쳐 나와 누가 비명을 지르는지 찾아 다녔는데, 그렇게 비명을 누가 지르는지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파트 관리원하고 자기 뿐이더라는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에 대해서 이웃이나 지나가던 사람들이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용의자와 싸우려고 하지 않는 현실에 대해서 사회철학적인 비판을 가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또 다른 측면도 있는 것 같애. 개별적인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이지만..."
내가 가만히 듣다가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러니까, 요즘 사람들은 운동을 많이 하지 않고, 그래서 체력적으로 쇠해져서 공격성이 부족해졌고, 그래서 범죄를 목격해도 잘 싸우지 않는다고 봐."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웃으며 말했다.
"역시나... 운동...! 태권도하는 사람다운 생각이시네요."
그런 반응이 별로 대수로운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계속 설명했다.
"물론 그렇게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경험한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 또한 이러한 근거에서 다른 사람들의 주변적인 문제나 과거를 추론할 때 잘 맞는다는 점 등을 볼 때, 운동량 증가에 따라서 사람들의 공격성이 적절하게 증가한다는 것은 신빙성이 있다고 봐.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 등으로 사람들의 운동량이 전반적으로 줄어든 것도 사실이고. 물론 윤리적으로 사람들의 가치관이 개인주의적으로 바뀐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이러한 육체적인 조건이 달라짐에 따라서 사람들의 심리변화가 일어난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라고 봐.
사회적인 조건에 따라서 사람들이 남의 범죄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설득력이 있겠지. 하지만 문제는 그런 사회적인 조건의 변화가 어떤 구체적인 경로를 통해서 남의 범죄에 무관심한 현상을 일으키는가 하는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야. 사회적 변화에 따라서 운동량이 감소하고 체력적인 감소에 따라서 적절한 공격성이 사라져서 그렇다는 것도, 매우 중요한 한가지 작용 경로라고 할 수 있다고 봐. 물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야."
그러자 처음에는 농담으로 무시하려던 사람들 몇몇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이 내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것은, 내가 훌륭한 설명을 했다는, 뭐 자부심 같은 것이 전혀 아니다.
철학과 학생들도 자신들이 익숙한 것만을 받아들이는 선입견에서 별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에 스스로 답답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서 말하면 강력계 형사들도 가끔은 경청을 한다. 구체적이고 경험에 일치하는 내용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범죄가 일어나는데 거기에 무관심한 사람의 행동이라는 것에 무슨 철학적인 의미가 그리 크게 있을까?
하지만 철학 전공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철학적인 맥락에서만 잘 이해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경험에 가까운 이야기는 무시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또 철학과 학생들은 장점이 있다. 설명이 납득할만하면, 그것이 익숙한 것이 아니더라도 생각해 보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냥, 그런 생각을 했었다. ...
* 파깨비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4-03-15 0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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