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동안 나는 교육방송국에서 유아교육 프로그램 만드는 일에서 자문역을 맡아왔다.
그런대로 재미있는 일이었다. 유아들의 눈높이를 따라가는 것이 어려웠고, 그래서 내가 제안한 생각들 중 많은 것이 적절치 않다고 얘기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내 생각의 많은 부분이 반영되었고, 사람들은 내가 제안하는 생각에 많이 자극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방송국 일이 싫어지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방송국에서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 예를 들어서 "열쇠"를 "키"라고 한다거나 "책상"을 "데스크"라고 한다거나 하는 것.
그런 말들을 가만히 들어보면 많은 부분이 굳이 영어단어로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그들이 그렇게 영어단어를 우리말에 섞어 쓰는 것이 일종의 허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사실 나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경멸하는 사람이다.
예전에, 대학 석사과정 때쯤에, 사귀었던 여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도 우리 말에 영어를 즐겨 섞어 쓰곤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여자의 그런 면을 경멸했고, 그런 점을 분명히 전달했다. 그 사람은 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래서 별로 친하게 사귀지도 않은 우리 교제는 그렇게 좋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영어단어를 섞어 쓰는 것이 일종의 허용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우리 말을 먼저 쓰고 영어를 쓰는 경우가 흔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예를 들어서 "그 문제는 그냥 건너 뛰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스킵하자는 것이지요." 뭐, 이런 식이다. 그렇다고 영어 좀 한다는 입장에서 발음이나 좋으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발음은 완전 콩글리쉬이고,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그런 말 들으면 이해하지도 못한다. 내가 미국 사람들 좀 만나봐서 알 수 있다.
영어단어를 섞어 쓰는 것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실용적인 이유를 달지도 모른다. 말이 짧아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장면"은 "씬"으로, "열쇠"는 "키"로, "노래"는 "쏭"으로 바뀐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는 "공"을 "뽈"로 바꿔서 말한다.("볼"도 아니다. "뽈"이다.-_-;;) "자판"은 "키보드"로, "춤"은 "댄스"로 바꿔서 말한다. "베개"를 "필로우"로 부르는 사람도 보았다.
영어 단어를 섞어 씀으로써 의미가 더 분명해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철학강의를 하면서 영어 단어를 거의 섞어쓰지 않아도 의미전달은 매우 분명하게 된다. 말이 어색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영어단어를 섞어 쓰는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난 그런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반대로, 우리 말에 영어를 안섞어 쓰면 영어 배우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자랑같아서 좀 뭐하지만,(이 경우에만 자랑하자.-_-) 이 글을 쓰는 내가 미국 사람들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처음 하면 항상 듣는 말이 "당신 영어 잘 한다. 미국에서 살다 왔느냐?"하는 것이다. 난 대충... 미국 사람이나 영국 사람들과 농담 따먹기 정도는 한다.
하지만 언어는 사회의 산물이고 시대를 반영하면서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이 문제를 우리가 좀더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말이면 영어 단어를 우리 말에 섞어 쓰는 것이 자랑스럽게 보이는 것, 마치 상류층 사람으로 보이고 지식인으로 보인다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분위기인 것 같다. 왜 우리 말보다 영어가 우월해 보여야 하는가?
나는 어릴 때 교과서에서 본 얘기를 기억하고 있다. 만주족이 중국을 지배한 후에 만주어를 잃어버림으로써 한족으로 동화되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정치적 힘보다도 문화의 힘이 갖는 그 은근함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무서운 일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알지도 못한 새에 다른 정체성으로 동화된다는 것... 배운 사람들이 이런 점에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하는데, 오히려 배운 사람들이 이 현상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
우리 사회에서는 배운 사람들이 '배운 것만' 많을 뿐, 똑바른 정신을 갖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다른 여러 가지 것들에서도...
* 파깨비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4-03-15 0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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