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대한 누스를 보는 즐거움으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에서 최고의 성과를 인정받는다는 이야기, 그리고 줄기세포은행을 한국에 만들 거라는 이야기 등등.
그런데 가끔씩 눈살을 걱정스러운 뉴스도 보게 된다.
바로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윤리논쟁이다.
그런 윤리논쟁을 보면서 내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당쟁이다.
옛날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은 여러가지 명분으로 사화를 일으키면서 목숨걸고 싸웠고 상대를 죽였었다.
그 중의 한 주제가 뭔 줄 아는가? 바로 "주자가 성인인가 아닌가?"라는 것이었다.
주자가 성인이며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요즘 사람들에게 중국의 학자인 주자가 성인인가 아닌가를 따지면서 목에 핏대를 올린다면 다들 정신나갔다고 말할 것이다.
실제로 그런 문제를 가지고 목숨걸고 따지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당시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그 일에 목숨걸고 투쟁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 기억이 말하는 바는 이것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처절했던 싸움의 이유가 모두 말장난같은 것이었다는 것 말이다.
모든 윤리논쟁이 주자의 성인 여부와 같이 헛된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서 십자군 전쟁이나 1,2차 세계대전, 일본의 종군위안부 문제와 같은 것은 당시에 얼마나 진지하게 떠들었을지와 상관없이 지금도 중요하고 아마도 영원히 논쟁할 가치가 있는 주제일 것이다.
지금 줄기세포 연구를 가지고 윤리논쟁을 하는 것은 전자와 후자 중 어느 것에 해당될까?
어느 것이라고 말하기 전에 기준을 세워 보자. 헛된 명분 싸움과 영원한 윤리 논쟁의 차이는 무엇인가?
헛된 명분 싸움은 진실로 명분 싸움이다. 그것은 관념에 근거하고, 그 관념은 다시 '가능성'에 근거한다.
호주제도 폐지에 반대하는 많은 주장들은 그것이 한국의 가족제도를 망가뜨릴 것이라고, 사실상 '가능성'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한편 후자와 같이 진정 필요한 윤리 논쟁은 실제로 사람들이, 단 한 사람이라도, 충분한 이유없이 죽거나 다치고 혹은 겁탈당하며 개인의 삶을 망친다.
거기에는 '삶을 망칠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직접 삶이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지금의 줄기세포 윤리논쟁은 바로 성리학자들의 주자 성인 여부와 같은 문제이다.
그들은 줄기세포가 인간을 복제할 것이라는 '가능성', 그래서 비참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이유없는) '가능성'을 언급한다.
단지 가능성만 언급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줄기세포연구를 통해서 혜택을 입을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에 대해서 아무런 대안도 없다.
죽어가는 비참한 사람들은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실제로 죽어가고 있고, 죽음 이상의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줄기세포 연구는 단지 한 쪽에서 불안한 미래에 대한 어렴풋한 '가능성'만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한쪽에는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현실성'도 같이 두고 있는 쟁점거리이다.
윤리 논쟁에 대해서 말하자면,
윤리학자들이나 종교인들은 윤리적인 원칙에 철저해야 할 의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겸허해야 한다. 무엇에 대해서?
자신들이 틀릴 수 있음에 대해서 겸허해야 한다.
윤리학자들은 철학자들이다. 철학의 정신은 반성이다. 윤리학자들이 단순한 원칙을 철칙으로 믿는 순간 그것은 철학으로서의 윤리학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 때에 남는 것은 '진정한 윤리'가 아니라 맹종과 광기이다.
종교인들은 신이 틀렸을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믿는 신의 가르침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반성해야 한다. 종교인들은 신도 아니고 예수도 아니다. 죵교인들이 자신이 해석한 신의 가르침을 맹신하는 순간 그는 스스로 예수이고 구원자라고 말하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되는 것이다.
나는 제사를 허락한 한국 카톨릭의 정신이 신의 가르침을 어긴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융통성을 발휘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었는가?
한편 제사를 하용함으로서 예측되던 그 많은 위험한 '가능성'들이 다 실현되었는가? 그래서 한국 카톨릭은 망했거나 사이비 종교가 되었는가?
아니지 않는가.
훌륭한 철학은 항상 현실에 닻을 내리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종교인들은 논외로 하고 윤리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윤리학은 철학이다.
나도 철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철학자들은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학교에서 배운 다른 사상가의 책 하나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세계적인 연구에 대해서 어떤 권위를 가지고 비판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만약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비판한다면 그 이유가 어렴풋한 가능성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보여야 할 것이고 그 가능성이 그 많은 불치병 환자들의 고통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도 보여야 할 것이다.
* 파깨비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4-03-15 0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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